누구나 청소년기를 한 번쯤 지나왔다. 하지만 그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는지는 각자 다르다. 어떤 사람에겐 반짝이는 시절이었고, 어떤 사람에겐 견디기 힘든 터널 같았을 수도 있다. 나에게 청소년기는 설명되지 않은 감정들이 넘치던 시간이었고, 그 감정들을 어떻게 꺼내야 할지 몰라 막막하던 시기였다. 단지 철이 없었던 게 아니라, 아직 세상과 나 자신에 대한 언어가 없었던 거였다. 다 자란 지금에서야 그 시절을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여전히 어떤 순간들은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다 넷플릭스에서 몇 편의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는 다시 그때의 나를 만날 수 있었다. 오늘 소개할 다섯 편은 '성장'이라는 주제를 통해 청소년기를 정면으로 바라본 작품들이다. 그 안에는 교육, 가정, 사회, 정체성 같은 요소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건 그 시절의 우리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아냈는지를 다시 되짚어볼 수 있다는 점이다.
불완전한 시기의 기록
청소년기는 단지 사춘기의 다른 말이 아니다. 정체성의 중심이 형성되고, 사회와 개인의 틈을 처음으로 체감하는 시기다. 첫 번째로 소개할 다큐멘터리는 '세븐틴: 아직 끝나지 않았다'이다. 미국 뉴욕 브롱크스의 고등학생들이 졸업을 앞두고 보내는 마지막 학년을 담은 이 작품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학창 시절의 이미지를 완전히 뒤집는다. 학생들은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기도 하고, 마약과 폭력이 일상인 동네에서 버텨내야 한다. 졸업이란 단어는 이들에게 단순한 '통과의례'가 아닌 '생존 증명서'에 가깝다. 이 다큐를 보면서 나는 교육이라는 것이 얼마나 불공평한 환경에 놓여 있는지를 절실히 느꼈다. 나는 졸업을 당연하게 여겼지만, 어떤 아이들은 매일 '오늘을 넘길 수 있을까'를 먼저 고민한다. 그들의 치열한 하루는 내가 기억하던 10대와는 너무 달랐고, 그래서 더 깊게 와닿았다. 두 번째는 '문제아'이다. 이 작품은 전통적인 학교에서 낙오된 학생들이 대안학교에서 새로운 출발을 시도하는 과정을 그린다. 흔히 '문제아'라고 불리는 아이들은 왜 그렇게 행동하게 됐는지를 거의 아무도 묻지 않는다. 하지만 이 다큐는 그 물음을 던진다. 반항, 침묵, 무기력, 폭력은 모두 언어를 갖지 못한 감정의 다른 얼굴이었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며 청소년기의 '문제 행동'이라는 말이 얼마나 위험한 낙인일 수 있는지를 알게 됐다. 아이들은 교사 한 사람의 태도에 따라 완전히 달라졌다. 존중을 받은 아이는 고개를 들었고, 비난을 받은 아이는 더 깊이 고개를 숙였다. 결국 교육이란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한 사람을 인간으로 인정하는 일이라는 걸 절감했다.
성장을 담아낸 다큐들
세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가장 위험한 길'이다. 세계 곳곳의 아이들이 학교에 가기 위해 마주하는 극한의 환경을 보여준다. 밀림을 지나고 강을 건너고 절벽을 기어오르는 아이들의 모습은, 단지 위험함을 보여주기 위한 연출이 아니다. 이들에게 학교란 단순한 배움의 공간이 아니라 '존재의 가능성'이 열리는 유일한 통로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교육이 누군가에게는 선택이 아닌 생존의 방법일 수 있음을 깨달았다. '학교에 가기 싫다'는 말을 무심히 뱉었던 기억이 부끄럽게 느껴질 정도로, 이 다큐 속 아이들은 배우고자 하는 열망 하나로 물리적, 사회적 장벽을 통과해 나간다. 이 다큐를 보는 내내 나는 정말 교육의 의미를 알고 있었던 걸까? 라는 질문이 떠나지 않았다. 네 번째는 '소녀들의 반란'이다. 억압적인 가부장제 속에서도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10대 소녀들의 연대를 다룬 작품이다. 이 다큐가 특별한 이유는, 소녀들이 외치는 메시지가 결코 거창하거나 공격적이지 않다는 데 있다. 오히려 아주 조심스럽고, 때로는 떨리는 목소리지만 그 안에 담긴 진심은 강렬하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이 어떤 이에게는 삶 전체를 거는 행위일 수도 있다는 걸 실감했다. 익숙한 침묵을 깨는 일, 누군가의 규칙을 거부하는 일, 당연한 차별을 문제라고 말하는 일은 절대 쉽지 않다. 하지만 이 소녀들은 그 모든 일을 해낸다. 그들의 행동은 단지 반항이 아니라, 스스로를 지켜내기 위한 치열한 선택이다. 마지막으로 소개할 다큐멘터리는 '디 어전스 프로젝트'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청소년들이 무대 예술을 통해 자신을 표현하며 정체성과 감정을 풀어가는 여정을 담았다. 춤과 노래, 시, 연극 같은 표현 도구를 통해 이들은 말로 할 수 없던 감정을 드러낸다. 특히 이 작품이 강렬하게 다가왔던 이유는, 자기표현이 단지 창작을 넘어서 '존재 증명'으로 작동하는 장면들 때문이다. 어떤 아이는 가족의 폭력에서, 어떤 아이는 성정체성의 혼란에서, 또 어떤 아이는 사회적 차별에서 살아남기 위해 예술을 붙잡는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예술이 얼마나 강력한 치유의 도구가 될 수 있는지를 처음으로 체감했다. 그들의 움직임 하나, 시 한 줄, 울먹이는 목소리 하나가 모두 "나를 봐줘"라는 외침처럼 들렸다.
그 시절을 겪은 나 자신
이 다큐멘터리들을 본 뒤, 가장 많이 떠올랐던 건 '그때의 나'였다. 어른들의 시선에서는 아무 문제없이 살아가던 학생이었지만, 내 안에는 말하지 못한 수많은 감정들이 떠돌고 있었다. 성적, 진로, 친구, 가족, 외모, 정체성 등등 나는 내가 왜 힘든지도 모르면서 힘들었고, 그 감정을 누구에게도 솔직히 꺼낼 수 없었다.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보면, 그 시절을 나답게 살아냈다는 것만으로도 대견하다. 다큐 속 아이들의 얼굴을 보고, 나는 그 시절의 나를 처음으로 제대로 위로할 수 있었다. "그때 너는 잘하고 있었어"라고. 그리고 동시에 나는 스스로에게 물었다. 지금 나는 어떤 어른인가. 누군가의 청소년기를 대하는 자세는 어떠한가. 이 다섯 편의 다큐멘터리는 단지 아이들의 이야기를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나의 태도와 시선을 되묻게 만들었다. 우리는 너무 자주 충고하고, 너무 쉽게 평가하며, 너무 빠르게 단정 짓는다. 하지만 진짜 어른이라면 물어봐야 한다. "지금 어떤 감정이야?", "괜찮아?"라고. 청소년은 단지 나중에 어른이 될 사람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을 살아가는 '완전한 존재'다. 그들의 불안과 질문, 분노와 두려움은 모두 정당하다. 우리는 그 시절을 지나왔고, 그래서 더 잘 안다고 착각하지만, 사실 그때의 우리는 아직도 우리 안에 남아 있다. 이 다큐멘터리들은 그 잊혀진 감정의 흔적을 다시 불러내어 조용히 말해준다. "성장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