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은 늘 우리 삶을 편리하게 만들어준다는 전제를 갖고 있다. 새로운 앱이 나오고, 더 빠른 속도의 기기가 등장할 때마다 우리는 그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삶의 일부로 흡수시킨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기술이 인간을 돕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선택과 감정, 심지어 존재 방식까지 조정하기 시작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폰을 손에 쥔 채 습관처럼 앱을 열고, 무심코 넘기는 콘텐츠들 사이에서 시간이 사라지고, 익숙한 알고리즘이 내 관심사와 감정을 예측하는 순간들. 기술은 단지 도구가 아니라 나를 구성하거나 혹은 구속하는 환경이 되어 있었다. 넷플릭스에는 이런 기술의 이면을 깊이 있게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있다. 오늘 소개할 다섯 편은 기술과 인간의 관계에 대해 질문을 던지며, 우리가 무엇을 잃고 있고,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다시 묻는다. 기술이 인간의 삶을 얼마나 바꾸고 있으며, 그 변화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하게 만든다.
통제와 선택 사이
첫 번째로 소개할 다큐멘터리는 '소셜 딜레마'이다. 우리가 매일 사용하는 SNS의 알고리즘이 어떻게 인간의 행동을 조종하고, 중독과 분열을 부추기는지에 대해 실리콘밸리 내부 인물들의 고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나는 이 다큐를 처음 봤을 때 충격을 받았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다고 믿었던 정보들이 사실은 누군가가 설계한 방식대로 주어진 것이었고, 그 결과 내 감정과 판단조차 점점 비슷한 패턴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이 작품은 단순한 SNS 비판을 넘어서, 인간이 기술 앞에서 얼마나 취약해질 수 있는지를 드러낸다. 두 번째는 '디코디드: 디지털 문명'이다. 디지털 시대의 기술 발전이 정치, 사회,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흥미롭고도 비판적으로 다룬 이 시리즈는 정보화가 가져오는 윤리적 문제를 중심에 놓는다. 나는 이 작품을 통해 기술의 진보가 반드시 사회의 진보와 연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확인했다. 오히려 기술이 권력화될 때, 그로 인해 배제되고 감시당하는 이들이 생기고,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그 불평등에 가담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정체성과 인간성
세 번째로 소개할 작품은 '디 앤솔로지'이다. 인공지능과 인간의 경계를 다룬 이 실험적 다큐는 현실과 상상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기술이 인간성에 어떤 도전을 던지고 있는지를 탐색한다. 나는 이 작품을 보며 인간이라는 존재가 단지 감정과 이성의 조합만은 아니라는 생각을 하게 됐다. 기술이 점점 더 인간의 감정을 모방하고, 예측하며, 심지어 위로하려 할 때, 우리는 여전히 인간만의 고유함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 질문이 머릿속에 오래 남았다. 네 번째는 '하이프 하우스'이다. 틱톡 인플루언서들이 함께 콘텐츠를 만드는 과정을 다룬 이 작품은 단순한 유튜브 쇼처럼 보일 수 있지만, 기술과 정체성이 결합된 새로운 인간상을 보여준다. 나는 이 다큐를 보며 기술 플랫폼 속에서 만들어지는 자아가 얼마나 유동적이고, 때론 피로감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체감했다. 디지털 상에서 끊임없이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삶은 결국 자기감정을 타인의 반응으로 측정하게 만들고, 이는 자존감의 기반을 흔들 수 있다는 점에서 큰 울림을 남겼다.
기술과 인간의 방향성
다섯 번째로 소개할 다큐멘터리는 '더 그레이트 해크'이다. 케임브리지 애널리티카 스캔들을 중심으로 데이터를 수집하고 조작하는 방식이 민주주의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를 다룬 이 작품은 기술이 단지 기업의 이익을 넘어 정치 권력의 도구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드러낸다. 나는 이 다큐를 보면서 기술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이 어떻게 사회 전체의 윤리를 위협할 수 있는지를 뼈아프게 느꼈다. 우리가 매일 클릭하는 좋아요 하나, 검색어 하나가 모여 어떤 힘을 만들고, 그 힘이 누군가의 의도에 따라 움직일 수 있다는 사실은 깊은 경각심을 준다. 기술은 중립적이지 않다. 그것은 설계되고, 목적을 갖고 있으며, 때로는 권력을 지닌다. 우리는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술은 언제나 인간을 중심에 둔다고 말하지만, 실상은 점점 인간이 기술에 의해 결정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이 다큐멘터리들을 통해 나는 기술이 가진 편의성 뒤에 감춰진 감시, 중독, 조작의 위험을 더 분명히 보게 되었다. 하지만 동시에 기술이 반드시 악한 것도 아니며,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을 더 깊이 이해하고 연결하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함께 느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다. 그 태도가 무비판적인 수용이라면, 우리는 스스로 통제권을 넘겨주는 셈이 되고 만다. 나는 이제 기술을 사용할 때 그 기술이 내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지를 먼저 자문한다. 내가 도구를 사용하는지, 도구가 나를 이끄는지를 점검하는 일이 습관이 되어야 한다고 느낀다. 우리는 기술 없이 살아갈 수는 없지만, 기술에 기대어 나를 잃을 수도 없다. 그래서 이 다큐들을 본 이후로 나는 기술과 나 사이의 거리를 다시 조율하고 있다. 가깝되 종속되지 않게, 편리하되 의존하지 않게, 연결하되 주체를 잃지 않게. 그것이 기술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의 가장 건강한 자세라고 믿게 되었다. 그리고 글을 마치며 언급하고 싶은 내용이 있다. 이번에 작성한 글에는 이전에 작성했던 SNS와 인관 관계의 상관관계 다큐멘터리 추천이라는 글에서 추천했던 다큐멘터리와 다소 겹치는 부분이 있다. 주제를 최대한 안 겹치도록 잡고 작성하고 있지만, 이번 주제에서는 부득이하게 같은 다큐멘터리지만 다른 시선에서 다시 언급하고 추천하게 되었다. 혹시 눈치를 챈 독자가 계시다면 양해를 부탁드린다.